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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에서 잠시 찐빵으로 요기를 하고 굽이굽이 평창을 돌아 영월로 간다. 강림을 거치면 빠르나 구제역(口蹄疫)으로 길을 막아버렸다. 우백 선생님의 근황에서 구제역 이야기로, 다시 세상사로 대화의 진폭은 강원도 산길만큼 깊고도 곡진하다.
영월에 접어들자 길 왼편짝으로 장릉[莊陵, 단종릉]이 보인다.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무덤이다. 우백 선생님이 왕방연 시조로 단종 애사를 짚는다.

“천만 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희옵고
내 마음 둘 듸 없어 냇가의 안자이다
져 물도 내 안 같도다 우러 밤길 예놋다

노 산군으로 격하된 단종을 영월로 호송한 금부도사(禁府都事) 왕방연의 시조이다. 구절마다 슬픔이 안타깝게 달려 있다. 그로부터 달이 차고지며 초목이 자라고 스러지는 영허소장(盈虛消長)이 500여년, 저때 ‘울며 간 밤길’을 내 차는 호기롭게 내달린다. 고씨동굴을 뒤로하자 영월화력발전소가 보인다. 8 ·15광복 직후의 전력 수급조절에 크게 기여한 발전소다. 흰 수증기인가? 하얗게 하늘을 반이나 덮었다.
이제 여기저기 김삿갓이 보인다. 김삿갓,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그의 본명은 김병연이다. 홍경래란 때 항복한 조부의 그늘로 지팡이와 삿갓을 벗 삼아 천하를 떠돈 비운의 시객(詩客). 2009년, 그의 생가가 있는 이곳을 김삿갓면으로 개명하였으니 그의 비운(悲運)은 조금이나마 덜어졌을까.
조선민화박물관은 이곳에 있었다. 그야말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형적인 텃자리, 낮지만 가파른 중턱에 단정히 좌정한 조선민화박물관은 다부지게 잘 지어진 목조건물이다. 수줍은 웃음을 짓는 남성 한 분이 우리를 맞았다. 오석환 관장님이 출타 중이시라며 우리를 맞은 이는 박승수  해설사시다. 훤칠한 이마가 강원도 찬바람에 추워보였지만 선한 눈매와 웃음, 여기에 말솜씨까지 더하니 넉넉한 인정이다. 민화에 대한 내공도 만만치 않았다. 환대도 따듯했지만 시간은 이미 1시를 넘어섰다. 꺼진 배꼬래부터  채워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