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이번 심사에서는 민화의 현대적인 모색에 대해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제는 단순한 묘사에서 무언가 현대인의 취향에 맞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지 않느냐는 중론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심사위원들은 황은자의 문자도를 대상으로 뽑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병풍이 아닌 액자분야에서 대상으로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기존의 그림을 새롭게 구성하고 두터운 질감과 부드러운 색채로 재해석한 면을 높이 산 것이다. 또 다른 현대적인 민화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주성준의 호랑이그림이다. 이 경우 소재는 민화적인 것이되, 기법이 민화적이라기보다는 한국화에 가깝다. 주성준씨는 이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기 때문에 그것보다 낮은 상을 수여하기 주저되어 특별상을 수여한다. 더 솔직한 고백은 아직 획기적인 현대화를 받아들이기에는 심사위원들의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민화를 활용한 현대적인 그림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둘 작가로 기대된다.

민화의 장식성을 드높임으로써 현대 생활에서 민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액자분야 최우수상을 수상한 김선정의 책거리는 콜라주 기법을 활용하여 중간 중간에 천 조각이나 다른 질감의 종이를 사용했고, 프레임으로 고급스런 문양을 사용하여  장식적인 효과를 배가시켰다. 감각적인 색채와 세밀한 묘사도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병풍분야 우수상을 수상한 강효진의 장생도는 엄밀히 말하면 십장생도와 해악반도도를 조합한 작품이다. 황갈색조로 십장생을 표현하고 부분적으로 금색을 사용하여 전반적으로 고급스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두루마리처럼 가로로 긴 화폭을 4첩의 병풍으로 표구하여 현대적이면서도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으로 심사위원을 고민하게 한 문제는 민화의 범주에 관한 것이다. 김홍도의 맹호도를 모사한 문선영의 맹호도는 심사위원들 모두 그 놀라운 솜씨에 감탄했다. 정통 호랑이 그림은 터럭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표현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작업인데, 작가는 이것을 능란하게 소화해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김홍도의 작품을 민화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느냐는 점이다. 아무리 민화의 개념과 범주에 대해서는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여러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하더라도, 무명성이나 아마추어 작가의 그림이 아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인 김홍도의 작품을 민화라고 내세우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와 더불어 출품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궁정회화도 민화에 포함시킬 것인지 아니면 궁정회화(혹은 궁정장식화)와 민화로 따로 분류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큰 상을 수여하기는 어렵지만, 워낙 실력이 출중한 작품이라 우수상을 수상하기로 결정했다. 인물화는 맹호도처럼 그리기 어려운 분야인지 출품작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 가운데 유순덕의 곽분양행락도가 단연 돋보였다. 일부 묘사력에서 미흡한 면이 있으나, 인물화의 장르를 증진시킨다는 의미에서 병풍분야 최우수상으로 선정했다. 이 장르의 많은 분발이 있기를 바란다.

이번 공모전에서는 많은 작품이 눈에 띄었으나, 지면 관계상 몇몇 이슈가 되는 작품을 위주로 심사평을 하는 데 그쳤다. 벌써 11년의 역사를 갖는 조선민화박물관의 민화공모전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병풍이 아닌 액자가 대상을 차지한 것과 단순한 묘사보다는 현대적인 효용성을 높인 작품에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이 지금은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앞으로 한국 현대 민화의 발전에 있어서 하나의 방향제시가 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해 본다.



2010. 8. 24.

심사위원장 경주대학교 교수 정병모